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이 전기정보공학부 박남규 교수·유선규 교수 연구팀이 서울시립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박현희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빛의 속도를 자유롭게 늦출 수 있는 광집적회로를 개발했다.
최근 생성형 AI와 대규모 AI 모델의 발전으로 연산량이 급증하면서 기존 전자식 반도체는 높은 전력 소모와 낮은 데이터 전송 속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저전력·초고속 연산이 가능한 광컴퓨팅 기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중이다. 그러나 속도가 고정된 빛의 고유 특성으로 인해 광컴퓨팅에 필요한 버퍼(Buffer) 및 메모리 기능의 구현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공동연구팀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광집적회로를 활용해 빛 신호의 속도와 모양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기법을 고안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까지 제시된 방식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도로 ‘느린 빛(Slow Light)’을 제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6월 30일 게재됐다.
연구 배경
광집적회로는 빛을 이용해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광통신·광컴퓨팅 분야에서는 광신호를 단순히 빠르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여러 신호의 도착 시간을 맞추거나 필요한 순간에 신호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광공진기*의 간섭을 이용하는 결합공진기 유도 투과(CRIT)* 구조가 연구돼 왔다. CRIT(Coupled-Resonator-Induced Transparency)는 특정 주파수 대역의 빛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고, 그 과정에서 광신호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광학 현상이다.
* 광공진기: 특정 주파수의 빛을 일정 시간 동안 가두거나 순환시키는 광소자. 광신호 지연, 필터링, 변조 등에 활용됨.
* 결합공진기 유도 투과(CRIT): 여러 광공진기의 간섭을 이용해 특정 주파수 대역의 빛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고 지연시키는 광학 현상.
하지만 기존 CRIT 구조는 한 번 제작되면 동작 방식이 대부분 고정돼 사용 목적이 달라져도 같은 회로를 다른 기능에 맞게 재구성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광신호를 더 오래 지연시키거나 특정 주파수 대역으로 바꾸려면 기능에 맞는 새로운 광소자를 다시 설계해야 했다.
때문에 광통신 장비와 데이터센터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새로운 기능의 추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AI 서버와 차세대 데이터센터처럼 막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유연성 부족이 광컴퓨팅 기술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연구 성과
이 한계의 극복에 나선 공동연구팀은 CRIT 시스템을 이루는 두 가지 빛의 상태(밝은 모드, 어두운 모드)를 하나로 묶어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두 개의 제어 가능한 루프 결합기를 도입했다. 그리고 한 번 제작하면 바꾸기 어려웠던 광공진기 구조를 필요에 따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래머블 광집적회로의 설계 원리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빛의 흐름을 필요한 만큼 지연시키고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CRIT 구조를 제안하고, 밝은 모드와 어두운 모드 사이의 빛의 간섭을 하나의 통합된 설계 변수로 다룰 수 있음을 보였다. 이를 통해 그동안 그 구조가 정해져 있던 광공진기 회로의 설계 자유도를 크게 높였다.
특히 두 개의 루프 결합기를 이용해 광신호가 통과하는 주파수 대역의 폭과 형태를 조절하고, 회로를 지나는 광신호의 지연 및 전달 특성까지 필요에 따라 제어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하나의 광공진기뿐 아니라 여러 공진기가 연결된 구조 전체에서 광신호의 진행 속도와 전달 특성을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연구진은 회로를 동작 중에 제어하면서 광펄스(Optical Pulse)*의 진행 속도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수치 계산으로 시연했다. 그 결과, 광신호의 지연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면서도 신호 처리 성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으며, 별도의 특수 소자를 추가하지 않고도 빛의 주파수 성분을 변환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 광펄스: 디지털 신호처럼 빛을 짧게 끊어 보낸 하나의 빛 신호. 광통신과 광컴퓨팅에서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본 단위로 활용된다.
나아가 연구진은 이번에 제안한 CRIT 소자가 실리콘 나이트라이드(Si₃N₄) 광집적회로* 플랫폼에서 실제로 구현 가능함을 3차원 전자기장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했다. 또한 재료 손실, 공진기 품질 편차, 후방 산란, 결합 특성 변화, 루프 결합기의 위상 오차, 열 누화(Thermal Crosstalk)* 등 실제 제작 및 구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을 분석한 결과, 제안한 구조가 현실적인 광집적회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동작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 실리콘 나이트라이드(Si₃N₄) 광집적회로: 낮은 광손실과 높은 제작 안정성을 갖는 광도파로 플랫폼으로, 광신호 처리와 집적 광학 소자 구현에 널리 사용된다.
* 열 누화: 회로의 한 부분에서 발생한 열이 주변 소자까지 전달돼 원하지 않는 영향을 주는 현상. 열 누화가 발생하면 소자의 동작 특성이 변해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