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운전자라면 겨울만 되면 주행거리 감소와 느린 충전에 한숨이 먼저 나온다. 눈이 쌓인 도로와 영하의 기온 속에서는 배터리 내부 화학 반응이 둔해져, 같은 충전기라도 평소보다 훨씬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서는 충전 속도가 20~30% 감소하며, 심한 경우 충전 시간이 1시간 이상 늘어나기도 한다.

왜 겨울에 배터리가 느려질까?
리튬이온 배터리는 25~35℃의 온도 범위에서 최적 성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영하의 기온에서는 배터리 내부 전해질이 버터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리튬이온의 이동이 느려진다. 이로 인해 배터리 내부 저항이 높아지고(임피던스 증가), 이온 전도도가 떨어지면서 충전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게다가 차가운 상태에서 급속충전을 시도하면, 리튬이온이 음극 표면에 제대로 삽입되지 못하고 금속 리튬으로 쌓이는 ‘리튬 플레이팅’ 현상이 발생해 배터리가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
배터리 예열 충전: 어떻게 작동하나?
배터리 예열 충전(Battery Preconditioning)은 충전 전이나 충전 중에 배터리를 먼저 적정 온도로 데우는 기술이다. 충전기나 차량 내부의 열 관리 시스템(BTMS: Battery Thermal Management System)이 히터, 열펌프, 또는 전력전자 장치에서 나오는 폐열을 활용해 배터리 팩을 순환하는 냉각수를 가열하고, 이를 통해 배터리 셀 온도를 25~30℃로 올린다. 온도가 올라가면 전해질이 부드러워지고 이온 이동이 원활해져, 내부 저항이 낮아지면서 충전 효율이 20~30% 개선된다.

최근에는 충전기 자체에 가열 시스템을 통합해 충전과 동시에 배터리를 데우는 방식도 연구되고 있다. 특히 무선 충전 패드에 열 전달 기능을 결합하면, 차량이 주차장 바닥의 패드 위에 서는 것만으로도 전력과 열이 동시에 배터리로 전달되어 별도의 예열 과정 없이 최적 충전이 가능해진다.
적용 사례
테슬라는 슈퍼차저 도착 전 내비게이션 경로를 분석해 배터리를 자동으로 예열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운전자가 급속충전소로 경로를 설정하면, 차량이 도착 시간을 계산해 미리 배터리 온도를 높여 충전소 도착 즉시 최대 출력으로 충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현대·기아는 ‘배터리 컨디셔닝 모드’를 통해 운전자가 수동 또는 자동으로 배터리 예열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모드를 켜면 충전 전 배터리가 자동으로 가열되어 겨울철 충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미시간대학교 연구팀은 2025년 영하 10℃ 환경에서도 10분 만에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 기술을 발표했다. 이들은 음극에 레이저로 미세한 통로(40µm)를 뚫고, 원자층 증착(Atomic Layer Deposition) 방식으로 리튬보레이트-카보네이트(Li₃BO₃–Li₂CO₃) 보호막을 입혀 저온에서도 이온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했다. 이 기술은 Arbor Battery Innovations라는 스타트업을 통해 상용화를 추진중이다.
Modine은 상용 전기차용 열 관리 시스템 ‘EVantage’를 개발해, 배터리 온도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면서도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차량 섀시에 통합되어 추운 날씨에도 배터리를 최적 온도로 유지하며 작업용 차량의 주행거리와 신뢰성을 보장한다.

예열을 넘어, 수명과 안전성 향상
배터리 예열 기술은 단순히 충전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배터리 수명 연장과 안전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향후 고속 무선 충전 인프라와 결합될 경우, “주차 = 예열 + 충전”이라는 새로운 이용 패턴이 가능해져, 겨울철에도 계절과 무관하게 일관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두려운 전기차가 아니라, 사계절 내내 믿을 수 있는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